카카오톡을 탈퇴하며 잡생각 풀어보기







    그동안 수없이 카카오톡을 사용하며 설치는 여러번 해봤지만 탈퇴는 처음이다. 휴대폰을 바꾸거나 초기화할 때 예전 계정과 이어보기만 했지 그만둘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절대로 충동적인 행동은 아니다. 대략 한 달쯤 전부터 SNS와 카카오톡이 내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왔다.


  하지만 결단을 내리기엔 적지 않은 용기가 필요했다. 내가 어제, 방금 전까지도 편리하게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었고 당장 없으면 문자를 써야할 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편리함을 벗어나면 사실은 편안함을 누릴 수 있음을 알았다.


  얼마 전 액정이 박살나면서 에전에 쓰던 스카이 슬라이드 폰을 2~3일간 사용했던 적이 있다. 말 그대로 전화와 문자만 되어서 불편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기우였다. 사실 우리는 다른 사람과 할 얘기가 그렇게까지 많지는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꼭 필요한 얘기라면 물론 목소리를 들으며 통화를 할 것이다. 편리함을 적극적으로 누리기 위해 어쩌면 쓸데없는 이야기들을 과잉생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얼마 전 SNS없이 90일을 지낸 미국 청년의 이야기를 인상깊게 보았다. 마침 내가 SNS나 메신저에 염증을 느끼고 있을 즈음이었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매일경제 | SNS없이 사는 90일의 삶 :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2&no=69671



  그 며칠간은 예전같으면 내 손에서 떠나지 않았을 휴대폰은 그저 액세서리처럼 가방 옆주머니에 얌전히 있었다. 괜히 예전 메세지 목록을 열어보거나 웹서핑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대신 책을 읽을 수 있었다. 페이스북에서 친구들이 '보여주는' 삶은 어떤 모습인지 훑어보고 빨간숫자에 환장하지 않을 수 있어서 좋았다. 그 때 결심했다. 수리가 다 되고 내 손에 돌아오거든 카카오톡을 해지하리라.


  그렇게 나름 굳은 결심을 하고서도 수리된 휴대폰이 돌아온지 며칠이 지난 오늘에야 탈퇴를 했다. 그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물론 다른 사람들과 의사소통에 대해 폐쇄적인 자세를 취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내가 연락이 닿길 원하는 사람의 연락처는 여전히 내 전화번호부에 있으며, 문자를 하거나 통화를 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들은 여전히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이다. 정말 이야기하고 싶은 친구들은 구글톡을 이용하면 될 것이다. 내가 피하고 싶은 것은 다른 사람과의 접촉 자체가 아닌 접촉의 과잉이기 때문이다.


  이로서 카톡 목록에서 1~2년이 지나도록 전화번호도 모르는 사람들과는 당분간 이별을 고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간 단 한 마디도 안해본 사람이 있기 때문에 외려 이별이라 말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당분간 그 안에서 나를 찾고 내가 찾았던 사람들은 내 이름이 없음을 의아하게 생각하겠지. 하지만 그런 사람은이 내 목록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 중 일부일 뿐이다.


  이런 나의 결심에 괜한 걱정을 해주는 친구도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나 스스로 얼마나 견딜 수 있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내가 편리함과 맞바꾼 편안함이 크게 다가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어쨌거나 이 생각이 유효한 한은 무의미한 잡담을 나누고 그것을 되씹어볼 시간에 생산적인 일에 정신을 집중할 생각이다.




멍교수
다락방 2012. 5. 1. 13:37
,
Powerd by Tistory, designed by criuce
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