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의 이야기






  내가 궁금해서 이곳에 들르는 사람은 없지만 애초에 만든 목적이 나의 이야기를 적어놓고 싶어서였기 때문에 그 본연의 목적에 모처럼 충실해져 보려고 한다.

 

  나에겐 약간의 정리벽이 있는 편이다. 반면에 또 어지르기 대마왕이기도 하다. 어제 치운 방도 반나절만에 책상위에서 무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지저분하게 만들줄 아는 능력이 있다. 게다가 요즘은 다시 밤마다 맥주를 한잔씩 홀짝이는게 습관이 되었는데, 먹고 난 병이니 컵이니 안주로 먹던 과자봉지니 책상위에 그대로 놓아두고 잠이 든다. 미안하지만 이것들을 치우는건 지저분한걸 두고 못봐 아쉬운 입장인 엄마의 몫이다.

 

  그렇게 지저분한 방에서는 뭐 하나 제대로된걸 해볼 마음이 나지 않는다. 책상을 말끔히 정리해두어도 안하던 공부가 하고싶은 욕구가 잠시 나타나지만 그뿐일 정도인데, 지저분한 방에선들 뭘 하고싶을까. 실제로 어제 먹던 과자봉지 위에 오늘 먹은걸 포개고, 언제 아작거렸는지 모를 김가루가 방바닥에 뒹굴고 있을 때도 있다.

 

  내 방의 상태는 그때그때 내 마음가짐을 말해주는 것 같다. 하루하루 어떻게 가는지 모르게 지나보내고, 요즘은 공부에도 저학년 못지않게 소홀했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인터넷의 바다에서 쓸데없이 기웃거리며 늦은 시간에 잠들고는 늦게 일어나 수업을 많이도 빼먹었다.

 

  그렇게 무기력한 하루하루가 지내다가 어떤 자극을 받을 때마다 정신이 든다. 그런 날에는 방을 치우기로 결심한다. 어지르는 성깔과 양립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정리벽이 이럴때 발휘되는 것이다. 다만 대충 적당히 치울거면 차라리 치우지 않는게 낫다는 이상한 심리때문에, 어지간한 자극에는 청소를 실행에 옮기지 않는다. 이젠 좀 제대로 지내보자는 다짐도 식상하고, 거기다 더 이상 이상태론 지내기가 내 스스로 불편하다 싶은 느낌까지 더해졌을 때쯤 주섬주섬 책상 위의 쓰레기를 치운다.

 

2010. 11. 9. 새벽에

 

  오늘이 그랬다.

  인생의 순간순간은 모두 중요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이 때에 뭐하는지도 모르게 흘려버리는 날들을 그냥 두고보기가 불편했다. 그것은 새로운 다짐이나 의욕보다는 차라리 가책이라고 보아야 마땅할런지도 모른다. 그래서 난 열한시가 넘은 시간에 새삼스레 책상과 바닥을 닦기 시작했고, 아무렇게나 벗어놓아 쌓여있던 옷들을 차곡차곡 개어놓는다. 방 구석에 무책임하게 쌓아놓은 책들도 제자리를 찾아주고, 읽지도 않은 채 새것 그대로 쌓여있는 신문들을 제대로 접어주기도 했다.

 

  이렇게 한 시간정도 걸려 방청소를 마치고선 스스로 흡족해했다. 방 뿐만이 아니라 마음까지 정돈되어 실제로 뭔가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으니 말이다. 물론 이렇게 말끔해진 책상 위에 책을 올려놓고 읽는 대신 노트북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인터넷을 들여다 보고 있었지만, 내일부터는 수업도 꼬박꼬박 들어가고, 흠뻑 빠져 있다가 손을 놓아버린 책도 다시 집어들어야지 싶다.

 

  사람에겐 이렇듯 환경이 중요하다. 어질러진 책상에서도, 어수선한 근황 속에서도 내가 할 일에 매진할 수 있는 사람에 대한 나의 동경은 이런데에서부터 나오는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말끔한 책상에서도 게으르지만, 주변이 어떠하건 내가 읽어야 할 책을 읽고 해야 할 일을 하는 사람이 될 자신은 없다. 내 주제엔 차라리 주변을 정돈하는 게 훨씬 빠를 것을 알기 때문이다.

 

  월요일에는 수업이 없는 나에게 한주는 화요일부터 시작한다. 오늘도 어김없이 늦게 잠들긴 하지만, 아침엔 일찍 일어나려는 굳은 결심으로 알람을 네 개나 맞춰놓고도 불안하다. 하지만 대충 맞춰놓고 어차피 안일어나겠지 하고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맘편히 잠들었던 날들에 대해 이젠 오히려 불편함을 느낀다는 데에 안도한다.

 

  나는 이 주에 수업을 빠짐없이 듣고, 모든 과제를 제 기한까지 제출할 것이며, 2/3정도 열심히 읽다 만 ‘정의는 무엇인가’를 다시 손에 잡아들 것이다. 수업을 마치면 나의 스터디 메이트와 함께인 날이건 혼자인 날이건 도서관에 남을 것이며 밤에는 세시 전에 잠들어보리라 다짐한다.

 

  살아오면서 굳게 큰소리치며 했던 다짐들도 여지없이 무너뜨린 나의 게으른 천성이 하루아침에 바뀔거라고 생각되진 않지만 그래도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 나는 나의 나태했던 날들에 대해 달게 대가를 치를 정도로 용감하지도 못하므로…

 

  이제는 자야겠다. 아니 솔직히 당장 잠들 자신은 없다. 마지막으로 담배를 한 대 피우며 오늘도 십수번은 했던 메일확인을 습관적으로 하다가 잠들어야겠지. 네 시 전에는 반드시 자자. 그리고 아침에 제 시간에 일어나자. 이건 정말이지 초등학생에게나 어울릴 다짐들이지만 이 나이에 이러고 있으니 한심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난 내가 기특하다. 한참을 주저앉아 있다가 늦었을지라도 어쨌든 일어설 생각을 하는 내가 기특하다.

 

  나태함과 성실함의 갈등을 짧게 마무리 짓고 얄팍한 편리함을 좇았던 순간들을 반성하면서, 다시금 그런 순간이 온다면 이 글을 떠올리면서 적어도 조금 더 길게 갈등할 수 있기를 바란다. 볼 사람이 없지만 적어도 한 사람은 끝까지 읽어주었을 것이므로, 지키지 못하면 그에게 부끄러움을 느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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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교수
다락방 2010. 11. 9. 0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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