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말씀만 하소서 - 박완서> 아들을 잃은 비애의 절절한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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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 오랜만에 선생님의 글을 읽었다. 선생님의 적잖은 작품들은 스스로의 삶을 되돌아보며 낱낱히 기록한 것들이다. 하지만 단순한 자서전이 아닐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삶이 얼마나 찬란했는가 하는 무용담이 아니라, 우리가 공감하고 몰입할 수 있는 시련의 기록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중에서도 <한 말씀만 하소서>는 박완서 자신의 일기로서 더욱더 개인적인 글일 수밖에 없다. 특히나 사랑하다 못해 어떤 의미로는 존경하는 아들을 잃은 슬픔의 기록이다. 어디선가 세상에서 가장 큰 불효는 부모보다 앞서는 것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것은 자식이 부모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슬픔인 동시에, 그로 인한 책망마저 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거나 한국은 물론 전 세계를 축제와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 넣은 88올림픽이 막 시작할 무렵에 작가 박완서, 아니 어머니 박완서는 아들을 잃는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만큼 준수하고, 사려깊고, 국내 최고대학의 의대에 진학했을 만큼 명석했던 아들은 그녀의 보배이자 자랑거리였다. 때문에 그녀는 한때 시시한 대학에 다니는 자녀를 둔 부모를 대할 땐 은근히 깔보는 마음도 있었음을 고백했다. 그들과 비교하면 비교할수록 더욱 돋보이는 아들은 제아무리 속 깊고 마음을 비운 어미라 할지라도 자랑이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바닷가에서 기념품의 재료가 될 돌을 줍는 노파를 보며 그 노파는 혹시라도 경제적으로 무능하고 주정뱅이 같은 아들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상상을 하며 그런 아들이라도 있다는 것이 부럽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스스로의 위선을 발견하는 과정과 그에 대한 반성은 매우 인상적인 부분이다. 사실 우리도 남을 존중해야 한다, 직업에 귀천은 없다, 그 사람의 학벌이나 재산보다는 됨됨이가 중요하다는 말을 하지만 우리는 사실 나보다 못한 사람을 은근히 깔보면서도 그를 추켜세우며 오히려 도덕적 우위마저 독식하려는 위선을 저지르고 있다. 하지만 겸손의 미덕을 온몸으로, 뼈저리게 느낄 수밖에 없는 시련이 닥치면 비로소 얼마나 자만하고 우매했는가를 깨달을 것임을 일러준다. 이러한 깨달음은 그녀가 자신의 속좁음과 같은 허물을 우리에게 적나라하게 드러내주기 때문에 가능했으며, 우리들 중 누구도 그것에 대해 손가락질 할 수 없음을 알기 때문에 비난하기 보다는 숙연해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왜 하필 내 아들을 데려갔냐는 어미의 비애는 그로하여금 신을 책망하고 저주하고, 더구나 부정하게까지 만든다. 하지만 그녀는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통해,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내면과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점차 기운을 차리게 된다.
제정신으로는 견딜 수 없을 것만 같던 시련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그나마 똑바로 설 수 있게 되기까지의 이야기가 섬세한 감정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가장 솔직하고도 뛰어난 글로 옮길 능력이 있는 이를 통해 전해들을 수 있다는 사실은 그저 감사한 일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다른 사람이 시련을 이겨내는 방법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줄 뿐 아니라, 나보다 불행한 사람을 보며 위로받곤 하는 우리네의 속물근성을 여지없이 자극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고마워하는 한 편, 또한 미안했다. 나 역시 이 글을 읽으며 나의 아픔들을 작은한 것으로 치부할 힘을 얻은 한 사람이므로...
<한 말씀만 하소서> 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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