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교수의 정치보기] '빨리빨리' 문화와 '냄비근성'이 뭐 어때서?






 

  내가 예쁘고 착하고 귀여워서 1,000m 앞에선 신민아와 구별하기가 너무 쉽지는 않은 배우자와 만족스러운 직장 다음으로 갖고싶은건 훌륭한 정치인이다. 아 물론 그 사이에 아무것도 없다면 난 예수님이거나 부처님이거나 거짓말쟁일거다. 무수히 많다. 어쨌거나 그 사람은 내게만 그러해서는 안되고 우리 모두가 인정하고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만약 그러한 공감대가 형성되었다면 이미 그의 발자취는 면면히 우리 사회에 녹아 흐른 후일 것이다.

 

  곧 있을 한미합동 군사훈련때문에 위용을 자랑한다는 조지 워싱턴호가 서해에 올라온다는데 갑자기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한 나라의 수도와 항공모함에 역대 대통령의 이름을 감히, 오히려 자랑스럽게 갖다붙일 수 있다는 것이 부러웠다. 우리에게도 박정희 기념관과 일해공원이 있지만 그것은 특정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어느 한 무리의 것이지 국민 모두의 것이 아니다. 눈치챘겠지만 건국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며 여전히 전국민의 존경을 받는 그들이 아니라 나는 외려 존경할 사람을 가진 '전국민'을 질투하고 있다.

 

  누구나 알고있는 것처럼 대한민국의 건국은 극적이었지만 분명 희극만은 아니었다. 독재로 시작하여 허약한 내각제의 실패, 연이은 군부독재의 연속은 우리 사회에 일정부분의 득과 치명적인 독을 남겼고 그 상흔은 아직도 우리사회의 여기저기에 남아있다. 이처럼 전 국민의 지지는 커녕 평가자들을 둘셋으로 나누어 싸우게 만드는 정권들만 존재했지만 우리나라가 해방 이후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퇴보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히려 빠른 성장과 발전으로 신흥국들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런 힘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무엇이라 하나를 콕 찝어 시원하게 얘기할 순 없지만 순전히 운이 아니라 우리에겐 그럴만한 자질이 있었음이 분명하다. 지금의 우리가 자신들보다 수월히 살 수 있는 사회를 물려주고 싶어했던 사람들의 희생은 물론이고, 역대 대통령들도 어쩌면 자신이 추구하는 사욕에 우리나라가 아닌 자신의 나라를 발전시키고 싶은 욕심도 포함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우리는 많은 발전을 이루어 왔고, 앞으로도 분명 그럴 것이다. 물론 고성장 속에서 다양한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긴 하지만 이런 문제는 대부분 선진국들이 '우리만할 때' 겪었던 일들이었다. 우리는 단지 그 과정이 빠를 뿐이고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 또한 남들보다 빠르게 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우리가 자조의 소재로 흔히 꼽는것들 중 가장 있기있는건 빨리빨리문화와 냄비근성이다. 오늘 오후 6시에 부산에서 상차된 택배는 목적지가 어디가 되었건 90%가 다음날 도착한다. 한 달에 택배기사를 열 번은 넘게 마주치는 우리 어머니가 훌륭한 증인이다. 물론 우리나라의 모든 것들이 비좁은 땅덩어리 때문에 아웅다웅 부대낄 수밖에 없는 덕분일지도 모르지만 엊그제 주문한게 아직 도착하지 않으면 택배회사에 전화를 걸고마는 우리의 근성 속에 숨어있는 유전적 특질도 무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처럼 오전에 주문하면 오후에 띵동 택배입니다 해도 초조하게 기다리고 마는 속성이 우리의 남은 정치적 경제적 민주화마저 이룰 수 있는 동력에 보탬이 되어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면 뭐든 신속하게 하려는 관성을 좋게만 보느냐면 그렇지도 않다. 난 방금전에도 훼미리마트에 들러 LSS 3mg를 집어올 수 있었지만 스웨덴의 잡화점은 오후 5~6시가 되면 이미 문을 닫을때가 되어 그 무렵 들어온 손님이 빨리 나가주었으면 하는 기색이 점원의 얼굴에 돈댄다. 가봤냐고? 안가봤다. 살아본 사람 얘기이니 그게 얼마나 묵은 얘긴지는 몰라도 최소한 우리나라처럼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솔직히 우리도 그렇게 변했으면 좋겠다. 사실 새벽에 야식이나 담배 좀 못사면 어떻고 꼭 다음날 택배를 못받으면 어떠냐. 그 시간에 거리가 잠들면 급전이 필요해서 마지못해 서있을지 모를 그들에겐 조금 미안하지만 밤새며 정신적 신체적 고통과 싸우는 야간 알바생이 있을 필요도 없고 누구나 밤엔 잠들 수 있는 권리를 가지니 말이다. 그즈음이면 나는 급한건 나가서 사고 아닌건 주문해놓고선 곧 오겠거니 손놓고 기다리는 다음 세대 녀석들을 보며 참 속도좋다 하겠지만 택배기사도 박봉을 좇으며 꾸역꾸역 할당량을 채우다 과로로 쓰러지기보다는 사정 되는대로 부지런히 배달하는 불상사가 없을 것이다. 그렇게 느슨하게 일하고 삶의 질을 추구할 수 있는건 그럴만한 물질적 여유 또한 생긴 뒤일 것이다. 미안한 얘기지만 아직은 그럴 때는 못되는 것 같다. 나의 허접한 이 비유가 지금도 여전히 분배보단 성장이 앞서야 하는 시기라는 말을 하고자 함이 절대 아니란 것을 알아준다면 내가 온전히 전달했음을 자찬하기 보다는 읽는 이의 명민함에 감사해하고 싶다. 내친김에 부족한 글빨과 게으름 때문에 택배를 갖다댄 얄팍한 얘길 나름대로 확장하는 것도 읽는 사람의 몫으로 돌릴랜다.

 

  냄비근성도 그렇게 구린 것만은 아니다. 어떤 일에 급속히 달아올랐다 곧 잊고 아무렇지 않은 듯이 흐지부지 되고 마는 습성은 가끔 우리들 스스로가 병진인가 싶게 만들지만 절대로 그뿐이 아니다. 미선이 효순이 사건은 거의 잊혀졌지만 그로 인해 보태진 미군에 대한 반감은 여전히 알게모르게 남아있고, 2002년 월드컵 이탈리아전에서 열광했던 설기현의 극적인 동점골도 방금전까지 잊고 있었더라도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장면을 보면 점차 무뎌질망정 그 때의 짜릿함을 몸이 기억하고 있음을 깨닫고 놀란다. 남아공 월드컵도 가물가물한 2010년 말까지 설기현의 동점골을 그 이후로 매일매일 생각했다면 미안하지만 정신병자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관심을 요하는 수많은 일들이 하루가 다르게 불어나고 있는데 그것들을 모두 기억하자면 각자의 위치에서 해야만 하는 일이 엄연히 있거늘, 그렇게는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한다. 월드컵의 열기가 K리그로 옮겨가지 못한건 우리에게 온전한 황금주말이 없거나, 있다 하더라도 다른 무엇을 하기보단 그것을 보러 갈 유인이 없기 때문은 아닐까. 이건희 회장의 불법증여 문제도 이미 잊혀진지 오래다. 그는 책임지는 듯 한 발 물러났다가 은근슬쩍 다시 나타났지만 그에 대한 반감도 잠시 뿐, 해외에서도 승승장구한다는 갤럭시들을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기사들을 보며 오히려 든든해한다. 하지만 그런 문제도 냄비근성으로 싸잡아 비하하기엔 무리가 있다. 정말 문제는 금방 잊고마는 근성이 아니라 '원래 그렇지 뭐' 하고 수긍하는 태도이다. 우리나라 100대 기업 중 단 한 곳이라도 100% 투명경영이 이루어지는 곳이 있으리라고 감히 기대하는 사람이 있을까. 오히려 이게 정말 문제다. 그리고 냄비는 불 위에 올려 물리적으로 새로운 음식을 만들 수 있기라도 하지, 쎄고 쎈 가열조차 못하는 식기들에단 미역이랑 식초랑 물을 넣고 냉국이나 휘휘 저을 뿐이다. 미역냉국을 비하하자는건 절대 아니니 오해말고.

 

  이렇듯 우리는 허접한 종자들만은 아니다. 때문에 이미 인격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훌륭한 지도자를 제발좀 부려볼 자격이 있다. 우리들 중 하나는 그러한 사람이 될 자질 또한 있다고 믿고 싶다. 어쨌거나 그의 업적이 끼치는 사회속에선 살아보지 못해도 좋으니 그 얼굴이라도 생전에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비록 그에대한 평가가 내 대에 합당하지 못할지라도 말이다. 그전엔 1,000m 앞에서 신민아와 1초만에는 구분해내지 못할 마누라와 방귀트며 낄낄거리고 있었으면 좋겠다. 그보다도 전엔 안먹어도 배부르게 해주는 직장을 가졌으면 좋겠고. 나는 이럴지라도 님들은 부디 캐소시민이 되지 않기를.



멍교수
공부방/정치보기 2010. 11. 27.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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