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에 대한 진지하고 논리적인 고민 <정의란 무엇인가 - 마이클 샌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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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유독 인문.사회학에 관한 책들이 인기다. 예전엔 베스트셀러의 자리는 유명작가의 소설이나 자기계발서, 재테크와 관련된 실용서나 심지어 토익교재의 차지였는데 거 참 신기한 일이로세. 그 시발점은 단연 '정의란 무엇인가' 열풍이었다. 대체 어떻게 생겨먹었길래 지루해보이는 책이 상위를 그렇게도 오래 차지했던걸까. 궁금해서 사다 쟁여놓다가 읽으려고 폼잡다보니 마침 전공수업 과제로 감상문을 써야 한다니 잘됐다 싶어하며 읽기 시작했다. 중간고사다 과제다 귀찮다 해서 근 한 달정도 걸린 것 같다.
뒤이어 나온 샌델의 '왜 도덕인가'는 아직 이전만한 돌풍의 조짐이 보이지 않지만 대신 장하준의 신간이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 이런 현상에 인문학의 부활이라거나 이는 일시적일 것이라는 관측이 맞서고 있지만 이전보다 많은 관심을 얻고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마침 네이트에 이러한 현상에 대한 기사가 떴는데 왠 중2병 환자가 열라 아는척 작렬하면서 하버드 마케팅 드립을 쳤다. 난 정작 책 사면서는 하버드 교수라길래 아 글쿤 하고 말았거늘, 아마 대부분의 사람이 그러했을 것이다. 댓글 안다는 내가 쓸데없는데에 흥분한 덕분에 네이트 댓글 이용약관에 승인하면서 내 아이디는 순결을 잃고 말았다. 그래도 이제 막 출간되는 '서울대 명품강의'란 책에 비하면 얼마나 양심적이냐고!!!!!
잡설이 너무 길었는데, 이제 이 책이 가치있는 이유를 세 가지로 요약해보려고 한다.(훗 있어보이는군)
첫째, 벤담과 밀의 공리주의로부터 시작해 칸트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 그리고 롤스의 정의론 등 다양한 사상들을 살짝 맛볼 수 있다는 점이다. 말 그대로 살짝이다. 하지만 그들의 대표작을 독파할 시간적 금전적 지적 여유가 없는 우리로서는 감지덕지다. 특히 '보이지 않는 손' 한 단어만 가지고 국부론을 다 읽은듯한 착각을 하는 우리에게 '최대다수의 최대행복' 또한 똑같은 허황된 만족감을 준다. 그 이상으로 자세히 알고보면 우리가 알고 있던 것과는 꽤 거리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둘째, 그러한 철학들을 기초로 가치판단의 연습을 해볼 수 있다. 소득과 부의 분배, 동성애와 낙태, 인종문제 등 다양한 사회적 쟁점들에 대해서 우리는 누구나 한 마디씩 할 말이 있다. 정교한 논리의 뒷받침은 기대하지도 않지만 적어도 직관적으로 어떤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지 나름대로 가려낸다. 하지만 그러한 직관은 나의 고유하고, 희미할망정 나름대로 일관적인 가치관으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은 그렇지도 않음을 깨달았다. 나의 가치관은 단편화된 지식들의 혼재와 다름아니었다. 이는 그만큼 내 견해의 정당성이 언제든지 도전받을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함을 보여준다. 실망할진 몰라도 이 책에서는 정의가 무엇인지 알려주지 않는다. 다만 나의 가치판단의 기준이 상당히 부실한 것이라는 사실과 그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의 존재를 깨닫게 해 줌으로써 '정의란 무엇인가' 하고 질문을 할 뿐이다. 내가 명확한 입장을 가지고 있는 질문에 대해 나름대로 대답하는 과정에서 딜레마를 경험시켜 줌으로써 나름대로의 해답을 찾아가는 길의 동반자가 되어준다. 어떤 쟁점과 그에 대한 견해를 설명하고 어 이거 맞는거같은데 싶으면 그와 상반되는 다른 견해를 주장한다.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인데 듣고보니 그것도 맞는 것 같다 싶으면서 혼란에 빠지고 운좋으면 나름대로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도 갖는 식이다. 막연히 당연하다 여기고 있던 것들의 본질을 명확하게 해 주고, 나아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밝혀주는 것이다. 깜깜하던 헌터맵 아홉시 방향을 밝혀주는 정찰 프로브처럼.
셋째, 이러한 과정이 지루한 이론적 설명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흥미롭고도 풍부한 예시를 활용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사례들은 논리적 엄밀성을 위해 특별한 가정을 제시하고 단순화를 시키면서 가공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가치가 크게 바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러한 가공의 과정을 통해 수월히 가치판단의 연습을 할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마냥 재미나게 술술 읽혀주지도 않는다. 읽다가 바로 앞문단이 이해되지 않아서 수시로 책장을 되넘기며 머릿속에 구겨넣어야 하는 부분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의 지식적 기반이 되는 책들을 탐독하기 위한 노력에 비하면 이정도는 땡큐지.
작렬하는 뒤끝을 과시하기 위해 다시 하버드 얘기를 안할수가 없다.(사실 난 뒤끝없다. 푸념의 즐거움(?)을 느끼거나 기억해뒀다 나중에 난처하게 만들면서 장난치는 경우는 많은데 대부분 뒤끝으로 오해받는다. 고쳐야지. 아 뭔 헛소리...) 이 책에 동봉된 DVD에는 샌델 교수의 강의 동영상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 내용은 애초에 강의록으로 만들어진 이 책에 나온 예시들이 고스란히 제시되니 새로울게 없다. 정말 흥미로운 것은 그 수업방식이다. 가득 찬 넓은 극장 강의실에서 샌델 교수는 책에서 나를 괴롭혔던 것처럼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논쟁을 붙이고 허를 찌르면서 그들의 가치관을 수시로 시험에 들게 한다. 비록 답은 찾지 못했을지라도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부쩍부쩍 자란 넘들과 우리같은 애들이 경쟁의 장에서 마주치는 상황을 떠올려보니 호들갑 좀 떨자면 서늘하다. 보면 아마 대부분이 그렇게 느낄지 모르겠다. 곧 EBS에서 생생한 강의 동영상을 방영해 줄 것이니 한 번쯤 들여다 보면 좋을 것 같다. 당장 보고 싶은 사람들은 http://www.justiceharvard.org에 접속하면 볼 수 있다. 물런 난 영어울렁증때문에 켜자마자 5초만에 닫았다능~
헛소리지만 우리나라 대학들도 취업학원이라는 오명을 벗고 학문적 성과를 차곡차곡 쌓으며 발전해서 우리애들 SAT 보게하지 말고 외국넘들 쌍코피 터뜨리며 한국어 공부해서 수능보게좀 만들어보자. 내 증손주 세대는 세계 일류대학에 티머니 들고 갈수있게말이쥐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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