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내 스펙을 포기해도 될까? <취업의 정답 - 하정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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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자기계발서의 바이블격인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을 몇 장 읽다 실망했던 적이 있다. 글쓴이가 철칙처럼 내세우는 항목들에 나를 끼워맞추라는 무언의 압박에 거부감이 생겼을 뿐 아니라, 그것들이 마음에 와닿기 보다는 그저 추상적인 얘기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나는 비슷한 부류의 책을 선물받더라도 잘 모셔두는 나쁜 습관이 생겼다.
그런 독선은 취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더 우스운 모냥새로 깨져버렸다. 애초에 멀리했던 책들 보다도 훨씬 속된 제목을 가진 이 책을 집어든건 그만큼 답에 대한 절실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실 내가 원했던 내용은 자소서 작성법이나 면접의 비결과 같이 보다 실용적인 것들이었다. 하지만 의외로 전반적으로 취업을 위해, 나아가 진지한 삶을 위해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한 이야기가 주로 실려 있었다.
뭐 대충 요약해 보자면 이렇다.
1. 스펙따위 쌓지 마라.
2. 취업은 최종 목표가 아니라 인생의 한 관문일 뿐이다.
3. 청춘의 경험은 매우 소중하므로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 말고, 좌절하더라도 무언가를 깨닫기 위해 노력하자.
4. 틀에서 벗어나세용.
간간히 제시된 자소서나 면접에 대한 팁은 취업시장의 초짜인 나에겐 적지 않은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그처럼 단순한 스펙과 스킬보다는 풍부한 경험을 통해 얻은 내공이 결국 취업 성공의 길로 인도한다는 점을 주로 말하고 있다. 자격증과 영어공부를 과감히 포기하고 밖으로 나가라는 말에 보잘것 없는 스펙의 나는 잠시 위안을 받았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경험을 통해서 무언가를 배우는 것은 물론, 그 경험을 맞닥뜨리기 위해 안주하고 있던 틀을 깨고 첫 발자국을 내딛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튼 앞만 보고 달렸다고 생각했지만 제자리만 걷던 나에게 주변을 돌아볼 시간을 주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취업을 위해서야 비로소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지게 된 것이 조금은 서글프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차라리 그럴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으니.
저자가 말한 취업의 정답은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어서 신선했다. 하지만 저자에게 매우미안하게도 당장 스펙을 버리고 길거리로 뛰쳐나갈 나갈 자신은 없다. 길들여진 탓인지 나약하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그래도 될까' 싶은 의문에 오늘도 토익문제를 풀고 마는 것이다.
하지만 취업은 그 판만 잘 넘기고 다음을 준비하면 되는 오락이 아니라 아니라 연속적인 삶의 한 과정일 뿐이며, 같은 직업을 가졌어도 스스로에 대해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던 사람과 아닌 사람은 살아가는 모습에 분명한 차이가 있을 것이란 생각을 했다.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고 그토록 바라던 직업을 얻게 되었다고 해서 그 순간 삶이 끝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아직 채워진 것보다 채워야 할 부분이 훨씬 많지만 그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 자체로 기뻐할 수 있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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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비문학
2011. 12. 11. 1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