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 년의 사춘기> - 고은(高銀) 대표시 모음







오십년의사춘기고은대표시모음
카테고리 시/에세이 > 장르시 > 현대시
지은이 고은 (문학동네,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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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왠지 시집을 집어든다는 것은 낯간지러운 일처럼 느껴집니다. 숭고하고 엄숙한 언어적 표현의 극치인 시를 읽는 사람을 떠올려 볼까요. 왠지 햇볓이 잘 드는 창가에 놓인 흔들의자 내지는 비오는 날 인적이 드문 카페에 앉아 있어야 할 것만 같고, 심지어 그는 곱게 늙은 얼굴과 가지런한 백발을 지녔다면 더없이 완벽한 그림이겠지요. 게다가 시집을 들고 걸으려면 가슴팍에 두 손을 모아 든 채로 낙엽이 무성한 가을의 거리 위가 아니면 안될지도 모른다는 진부한 편견 또한 예시로 덧붙여 봅니다.

  왠지 재미없고 지루할 것 같다는 생각에 더해 다양한 장르의 문학작품들 중에서 시에 대한 수요가 드문 이유는 이처럼 시를 읽는다는 것이 분에 넘치는 고상함을 향유하는 것만 같은 머쓱함 때문일지도 모르겠어요.


  저 또한 많지 않은 책이나마 여럿 읽으면서도 감히 시집을 손에 쥘 엄두를 못 내어 고은 선생님의 이 시집이 처녀독임을 고백합니다. 사실 대학 1학년때 오로지 허영심을 채우기 위해 윤동주 시집을 도서관에서 빌렸다가 며칠 뒤 단 한 자 읽지도 않고 고스란히 반납했던 경험이 있음 또한 말하지 않을 수 없군요.



  그런데 이런 제가 감히, 시를 읽어보겠다고 마음먹게 된 계기가 있습니다. 얼마 전 노벨문학상 수상자 후보로 고은 선생님이 후보에 오르셨지만 또다시 고배를 마시고 말았다는 소식을 듣고 그의 작품들을 찾아보기 시작한 적이 있었죠. 애초에 아는 작품이 없었기 때문에 눈에 띄는 몇몇 제목들을 클릭하다 '자작나무 숲으로 가서'라는 시에서 눈길이 머물렀습니다.

  이처럼 우연한 계기로 인해 조만간 고은 선생님의 시를 읽어보겠노라고 생각만 하다 오늘 도서관에서 빌려왔더랬죠. 물론 일부러 '자작나무 숲으로 가서'가 수록된 작품집을 골랐습니다.


  지하철에 타서 앉자마자 시집을 펴고는 한시간 반 남짓의 이동시간동안 알맞게 다 읽을 수 있었습니다. 중간중간 마음에 드는 시들은 빌린 책임에도 귀퉁이를 살짝 접는 실례를 범하면서까지 갈무리해두고 싶은 욕심을 어찌할 수 없더군요. 주옥같은 작품들 중에서도 어렵게 꼽은 작품들을 집에와서 두어번씩 다시 재음미하고는 드디어 덮을 수 있었습니다.



  작품의 진정한 가치를 알아보는 눈은 바라지도 않지만, 나름대로 느낀 바를 요연히 적어낼 줄 아는 손 또한 가지지 못한게 한이 됩니다. 다만, 시에 까막눈인 저에게조차 감동을 주길 주저않은 문장들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감히 나름대로 느낀 바를 나눠보자면, 고은 선생님의 시들은 날것 그대로의 솔직함이 묻어나는 것 같습니다. 난해함이나 완결된 형식이 저를 옥죄지 않고 가볍게 내버려둠이 좋았습니다. 그렇게 부담없이 술술 읽히면서도 사실은 아주 잘 정돈되어 있기도 함이 감탄스럽기도 합니다.


  시를 수월히 읽어나가면서도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는 사실이 기쁘고 감사합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시에 대한 편견을 깨고 이러한 감동을 함께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거 참, 시집 처음으로 제대로 읽어본 놈이 말이 많습니다. 여러가지 작품들 중에서도 왠지 여기에 적고 싶은 시를 하나 옮겨놓으며 물러가렵니다.







순간의 꽃



   *


오늘도 누구의 이야기로 하루를 보냈다


돌아오는 길

나무들이 나를 보고 있다


   *


엄마는 곤히 잠들고

아기 혼자서

밤기차 가는 소리 듣는다


   *


봄비 촉촉 내리는 날

누가 오시나 한두 번 내다보았네


   *


누우면 끝장이다

앓는 짐승이

필사적으로 서 있는 하루


오늘도 이 세상의 그런 하루였단다 숙아


   *


노를 젓다가

노를 놓쳐버렸다


비로소 넓은 물을 돌아다보았다


   *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


곰곰이 생각건대

매순간 나는 묻혀버렸다

그래서 나는

수많은 무덤이다


그런 것을 여기 나 있다고 뻐겨댔으니





멍교수
책꽂이/문학 2011. 3. 22. 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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