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바다 - E.헤밍웨이> 며칠 동안 또다른 삶을 살았던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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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 제목은 익히 들었지만 읽어보지 않은, 하지만 마치 읽은 것처럼 착각할 정도로 익숙한 작품 중 하나일 것이다.
이 이야기는 노인과 소년의 각별한 사랑으로부터 시작한다. 자기 입으로 '운이 없다'고 말하는 노인은 요즘 고기잡이가 시원찮긴 하지만 꽤나 성실하고 또 많은 경험을 가진 베테랑 어부이다. 소년은 노인과 한때 함께 일했지만 바다에 나가 허탕만 치다보니 부모는 소년을 노인으로부터 떼어놓았다. 소년은 그게 못내 아쉽고 노인에게 미안하다. 또 그리워한다.
노인은 소년을 잃은 이후 언제나처럼 혼자 바다에 나간다. 그동안 숱한 날들을 허탕치면서도 죽기 전에 한 번쯤은 자신도 멋진 놈을 배에 태우고 뭍으로 돌아올 것이란 소망만큼은 잃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묵직한 입질을 느끼고 그것을 잡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 과정은 단순히 육체적인 고통 그 이상의 것이었다. 아주 힘이 많이 드는 '순간'을 넘어서 주림과 외로움, 육체적 고통을 견디는 날들의 '연속'을 견뎌야만 했다. 그러던 끝에 노인은 드디어 며칠 동안 생사의 줄다리기를 했던 녀석을 잡아서 배에 매달고 온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돌아오는 길에 피냄새를 맡은 상어떼의 습격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적이었던 '녀석'이 이제는 가엾게 여겨지는 것을 넘어, 이윽고 자신과 동일시하게 된다.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뭍에 돌아온 노인은 그가 얼마나 대단한 놈과 싸웠었는지를 미처 알아보기도 전에 탈진한다. 소년과 사람들은 상어들에게 여기저기 뜯기긴 했지만 어마어마했을 것을 충분히 짐작하며 그의 용기와 인내를 존경하게 된다.
이 짧은 이야기는 노인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면서도 스스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투쟁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자연을 인간이 지배해야 할 대상, 대립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애정어린 상대로 보는 것이다. 이러한 면은 그가 물고기나 바다새들을 대하는 태도에서 잘 드러난다.
하지만 그처럼 숭고한 노인의 자연관보다 더욱 감동으로 다가왔던 것은, 이 며칠간의 사투가 사실은 우리 인생의 축약본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꿈을 안고 살아가면서 언젠가는 그것을 이루기를 바라는 우리들의 모습은 언젠가 큰 놈을 잡고야 말겠다는 노인의 다짐과 매우 비슷하다. 또한 꿈을 이루기 위한 사투, 그리고 결국엔 원하는 것을 얻었지만 사실은 얻는 것 만큼이나 지키는 것 또한 어려운 일임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상어를 물리치며 그가 입었던 육체적인 상처와 고독 속에서도 노인은 끝내 포기하지 않았다. 몸통이 떨어진 녀석을 데려왔지만 한 번도 버리고 말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이다.
나도 소망을 안고 살아가지만 노인만큼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는지, 그리고 그것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무척이나 고통스러운 과정이 따라올 것임을 각오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또한 그 꿈을 좌절시키려는 상어와 같은 도전들을 맞딱뜨렸을 때, 결과는 어쨌건 온 힘을 다할만큼의 인내와 성실함을 갖추었는지 반성하게 되었다.
상어들을 힘겹게 쫓으며 죽을 고비를 넘기는 노인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그리고 그가 죽을까봐 조마조마했다. 차라리 줄을 끊어서 잡은 놈을 바다에 버리고 가는게 낫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나를 꾸짖었다. 그만한 고통을 맞아본 적 없으면서도 그보다 치열한 고통을 받는 것처럼 굴었던 나의 나약함을 반성했다.
꿈을 향한 준비와 쟁취, 그리고 그것을 힘겹게 지켜내는 모습은 우리의 삶의 경로와 매우 흡사하다. 그래서 나는 노인이 그 며칠간의 바다 속에서 한 번의 삶을 더 살고 말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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