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불어 - 윤동주> 불현듯 느낀 나의 괴롬과 불안












바람이 불어 - 윤동주



바람이 어디로부터 불어와
어디로 불려 가는 것일까,


바람이 부는데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다.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을까,


단 한 여자를 사랑한 일도 없다.
시대를 슬퍼한 일도 없다.


바람이 자꾸 부는데
내 발이 반석 우에 섰다.


강물이 자꼬 흐르는데
내 발이 언덕 우에 섰다.




  비가 많이 오던 어느 날, 집 근처 공원에 올랐다. 공원 한켠에 작은 도서관이라 이름붙여진 책 부스에서 한국 대표시를 꺼내들어 무심코 표지를 폈는데 누군가 손으로 적어 붙인 몇 편의 시를 볼 수 있었다. 이름모를 누군가가 아마도 그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들을 끄집어 낸 것으로 보인다.


  그 중 '바람이 불어'라는 작품에서 눈이 머물렀다. 짧고도 단순한 이 시가 내 시선을 이끌었던 이유는 사실은 무심하게 이야기할 수 없는 자신의 괴로움을 무심한 듯 던져놓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요즘 내가 제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들만을 끌어안고 지내고 있기 때문에 평온함을 느끼고 있었지만, 이런 생활에 대한 위기감이 불현듯 찾아올 때가 있었다.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던 것들을 윤동주가 느꼈던 바람같은 무언가가 나를 깨웠기 때문일 것인데, 나의 그 바람은 무엇이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다.


  하지만 언젠가 그 바람은 또 나에게 불어올 것이며, 나는 새삼 깨어 내 안의 불안함을 들여다 보게 될 것이다.


  시대를 슬퍼해 보거나 한 여자에 대한 사랑을 가슴 깊이 품고있지 않아 지키고 있던 평온함은 사실 평온함이 아닌 단조로움일 것이다. 나 역시 그처럼 불안한 평화를 두려워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멍교수
책꽂이/책갈피 2012. 7. 16.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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