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나무 숲으로 가서 - 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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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 숲으로 가서 - 고은
광혜원 이월마을에서 칠현산 기슭에 이르기 전에
그만 나는 영문 모를 드넓은 자작나무 분지로 접어들었다.
누군가가 가라고 내 등을 떠밀었는지 나는 뒤돌아 보았다.
아무도 없다 다만 눈밭에 익숙한 먼산에 대해서
아무런 상관도 없게 자작나무숲의 벗은 몸들이
이세상을 정작하게 한다 그렇구나 겨울나무들만이 타락을 모른다.
슬픔에는 거짓이 없다 어찌 삶으로 울지 않는 사람이 있겠느냐
오래오래 우리나라 여자야말로 울음이었다 스스로 달래어 온 울음이었다
자작나무는 저희들끼리건만 찾아든 나까지 하나가 된다.
누구나 다 여기 오지 못해도 여기에 온것이나 다름없이
자작나무는 오지 못한 사람 하나하나와도 함께인 양 아름답다.
나는 나무와 나뭇가지와 깊은 하늘 속의 우듬지의 떨림을 보며
나 자신에게도 세상에도 우쭐애서 나뭇짐 지게 무겁게 지고 싶었다.
아니 이런 추운 곳의 적막으로 태어나는 눈옆이다
삼거리 술집의 삶은 고기처럼 순하고 싶었다.
너무나 교조적인 삶이 었으므로 미풍에 대해서도 사나웠으므로
얼마 만이냐 이런 곳이야말로 우리에게 십여 년 만에 강렬한 곳이다.
강렬한 이 경건성 이것은 나 한사람 에게가 아니라
온 세상을 향해 말하는 것을 내 벅찬 가슴은 벌써 알고 있다.
사람들도 자기가 모든 낱낱 중의 하나임을 깨달음 때가 온다.
나는 어린 시절에 이미 늙어버렸다. 여기 와서 나는 또 태어나야 한다.
그래서 이제 나는 자작나무의 천부적인 겨울과 함께
깨물어 먹고 싶은 어여쁨에 들떠 누구네의 어린 외동딸로 자라난다.
나는 광혜원으로 내려가는 길을 등지고 삭풍의 칠현산 험한 길로 서슴 없이 지향한다.
나는 시를 찾아읽을 정도로 감수성 충만한 문학청년은 아니다. 하지만 가끔 마주치는 시들은 나로하여금 공감과 반성의 시간을 내주는 경우가 왕왕 있어 내겐 감사한 존재이다.
고은 선생님의 시는 누구나 학창시절 교과서를 통해 한 두 편쯤은 접해보았을 것이다. 나 역시 그랬고, 그 후로 잊었지만 매해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느끼며 그의 시를 인터넷을 통해 찾아읽어 보았다. 그 때 큰 감동을 받아 그의 시집을 학교 도서관에서 빌리게 되었다. 시집을 부러 찾아 읽는다는 것. 나에게 무척 생소한 일이었다.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때 먹먹함과 쓸쓸함을 느꼈다. 한적한 자작나무 숲을 지나면서 삶을 돌아보는 모습, 그리고 왠지 모를 결연함이 묘하게 뒤섞여 있기 때문에 더욱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특히 '슬픔에는 거짓이 없다 어찌 삶으로 울지 않는 사람이 있겠느냐'는 대목이 매우 인상깊다. 나 또한 (다른 사람들과 같이) 삶으로 울어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인정해주고 또 어루만져주는 것 같은 느낌 때문이었을 것이다. 올 가을엔 한국인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등장으로 모두가 기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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